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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속의 시계] 홈 파인 뼈에서 광학시계까지···2만 년 시계 역사를 되돌아본다

  • 기사입력 2018.10.01 10:12
  • 최종수정 2018.10.01 10:17
  • 기자명 김타영 기자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인류가 처음 시간 개념을 가지게 된 건 기원전 2만 년부터였다. 당시 최소 시간 단위는 하루였다. 인류의 최소 시간 단위가 초까지 내려온 건 13세기 즈음이었고, 초를 셀 수 있는 장치가 등장한 건 19세기부터였다. 포춘코리아가 정확한 시간을 알고자 했던 과거 인류의 노력이 어떻게 시계로 구현됐는지, 또 시계 발전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살펴봤다.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사용된 해시계. 인류의 시간 단위를 ‘시간’ 단위로 끌어내렸다. 사진=셔터스톡
1970년대 콩고 셈리키 Semliki강 인근 계곡에서 기원전 2만 년 무렵 인류가 사용했던 도구가 몇 점 출토됐다. 이때 나온 출토물 중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홈이 파인 뼈였다. 이 뼈가 주목받은 이유는 날짜를 세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날짜는 곧 시간을 의미했다. 기원전 2만 년부터 인류가 이미 시간 개념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학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시간 단위로 달과 날짜까지만 이해했다. 인류의 시간 단위가 ‘시간’ 단위로 내려온 건 1만 5,000년이 훨씬 지난 기원전 3500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부터 인류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 길이나 모양을 보고 하루를 더 작은 시간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도 한 단계 진화해 이집트, 바빌론, 그리스, 중국, 메소포타미아 등 여러 문명권에서 해시계가 개발돼 쓰이기 시작했다.

서기 150년. 이집트 수학자 프톨레마이오스 Ptolemaeus가 구 위에 하늘의 별자리 지도를 그린 장치를 개발했다. 그는 이 구의 경도를 360등분하고 그중 1도를 다시 60등분해 이를 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분을 60등분한 것을 초라고 불렀다. 60등분을 한 이유는 당시엔 12진법과 60진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가 명명한 분과 초는 하늘의 별자리를 구분하기 위한 경도 개념이었지 지금의 시간 개념은 아니었다.

분과 초가 현재의 시간 개념 안으로 들어온 건 1267년의 일이었다. 기원전 45년부터 사용해온 율리우스력이 시간이 지나 실제 계절과 차이가 커지면서 수정 필요성이 제기됐고, 철학자 로저 베이컨 Roger Bacon이 이 일을 맡게 됐다. 로저 베이컨은 달력 시스템을 수정하면서 프톨레마이오스가 천구의 경도 구분을 위해 사용했던 분, 초 단위를 시간 단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막연히 1시간의 절반, 4분의 1이라고 표현했던 단위가 시간을 60등분한 분으로 표현됐고, 또 분을 60등분한 초 개념이 등장했다. 비로소 인류의 시간 단위가 초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었다.

◆ 시계 장치의 발전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도 시간이 흐르며 발전을 거듭했다. 서기 시대 이후에도 기원전 개발한 해시계나 물시계, 모래시계 등이 꾸준히 사용됐지만 조금씩 진보한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기계식 시계장치는 725년 중국에서 승려 일행 一行과 학자인 양영찬 梁令瓚이 만든 수운혼상 水運渾象이다. 이들은 물시계에 톱니바퀴를 연결시켰다.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물이 바퀴를 돌리면 바퀴와 맞물린 레버와 막대기가 15분마다 북을 치고 1시간 마다 종을 울리는 시스템이었다.

14세기부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계’의 모습을 갖춘 장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시계는 추의 낙하운동을 이용한 중량시계였다. 14세기 초부터 등장한 중량시계는 추가 낙하하면서 도르래를 통해 연결된 드럼통을 회전시켜 기어장치를 움직이는 시계였다. 기어장치는 시곗바늘과 연결돼 시각적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추의 낙하운동을 이용하는 만큼 중량시계는 매우 거대했고 따라서 개인이 소장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중량시계는 교회 꼭대기나 시계탑 등에 설치돼 지역 공공 기물로 관리됐다.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계다운 시계’가 나타난 때는 15세기였다. 이 시계는 물이나 추 대신 스프링 태엽을 사용해 톱니바퀴를 돌리는 한층 진일보한 시스템을 사용했다. 누가, 언제부터 개발해 사용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시계의 존재와 소유 기록은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의 시계는 1430년 프랑스 공작의 시계이다. 스프링 태엽 시스템 등장으로 시계는 이전보다 크기가 훨씬 줄어들었다.

16세기에는 마침내 세계 최초의 휴대용 시계 ‘뉘른베르크의 달걀 N?rnberg Egg’이 만들어졌다. 독일 뉘른베르크의 시계공이자 열쇠공이었던 피터 헨라인 Peter Henlein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공상을 자주했고, 이후에 실제로 그런 시계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계는 놋쇠로 만든 커다란 달걀 모양을 하고 있어 뉘른베르크의 달걀이라고 불렸다.


◆ 정확한 시간을 위하여

16세기 이후 시계 역사는 ‘시간의 정확성 향상’을 위한 노력으로 점철됐다. 16세기까지 개발된 시계들은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오차를 가지고 있어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경주는 158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의 등시성 발표로 본격화했다. 등시성은 진자의 주기가 진폭과 상관없이 일정한 성질을 말한다. 일정한 진자 주기를 이용하면 훨씬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당시 과학자들을 매료시켰다. 등시성을 발표한 갈릴레이는 말년에 진자시계를 도면으로 남기기도 했다.

1642년 갈릴레이 사망 이후 13년 만인 1655년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Christiaan Huygens가 진자시계 제작에 성공하면서 시계의 정확성은 한층 더 높아졌다. 등시성 이론이 나온 후 진자시계 등장에 십 수 년이 걸린 이유는 등시성이 진폭이 작을 때에만 성립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는 데다, 등시곡선 문제(진자의 주기가 진폭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위해 그려야 하는 곡선을 찾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난관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1673년 ‘진자시계’ 책을 저술해 진자시계 제조 기술 확산에도 공헌했다.

크리스티안 호이겐스의 업적은 진자시계 개발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동시대 영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훅 Robert Hooke이 고안한 헤어 스프링(시계의 등시성 유지에 핵심이 되는 부품)을 실제 시계에 적용해 1675년 세계 최초의 실용적인 기계식 시계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계는 하루 오차가 1분밖에 나지 않아 근대 기계식시계의 문을 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가 만든 시계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시계는 1657년 작품으로 네덜란드 레이던 지역 보어하브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시계의 끝없는 진화

헤어 스프링을 사용한 진자시계 제작이 보편화되면서 18세기부터는 시계 제작사들을 중심으로 정교한 시계 부품 제작이 화두로 떠올랐다. 시계 부품이 정교할수록 오차가 줄어들 것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배경이었다. 시계 부품을 정교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시계의 소형화’를 가속화했고, 이런 분위기는 회중시계가 실용화된 계기로 작용했다. 뉘른베르크의 달걀을 비롯한 이전 회중시계들은 크기와 무게가 상당해 시종이 들고 다녀야 했지만, 18세기부터는 주인이 직접 들고 다녀도 될 만큼 작고 가벼워졌다.

시계 부품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입소문을 탄 시계 부품 제조사나 시계 제작사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난 것도 이때부터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글로벌 명품시계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이 1755년 스위스 제네바의 심장부 릴 지역에 워크숍을 열었다.

시간 오차를 줄이는데 정교한 부품 제작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특출난 인물들도 있었다. 기계식시계 역사상 최고의 천재 워치메이커로 꼽히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 Abraham-Louis Breguet 등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들은 현대 기계식 시계에서 사용하는 대부분 기술의 바탕을 마련했다.

특히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는 시계 역사에서 꼭 집고 넘어갈 만한 인물이다. 브레게는 시계의 진화를 200년이나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충격 방지 시스템의 시초인 파라슈트를 비롯해 오토매틱 무브먼트(자동으로 동력을 축적하는 무브먼트), 파워리저브 인디케이터(태엽에 동력이 얼마나 남았는지 표시하는 장치), 투르비용(시계가 받는 중력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구) 등 그가 창안해 현실화한 시계 기능들은 면면이 다 혁신적이고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들이었다.

시계 제작사들의 정교한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과 브레게 같은 인물들의 등장으로 시계는 더욱 정확해졌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났던 오차가 17세기 들어 1분으로 줄어들더니 18세기에는 월평균 몇 분으로 줄어들었다.

1969년 세이코에서 개발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최초의 쿼츠시계 아스트론. 사진=세이코
◆ 쿼츠시계의 등장

19세기 시계 제조사들은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려는 집념과 노력으로 월평균 오차를 수 초까지 줄이는데 성공했다. 이런 시계들에는 ‘고정밀도 시계’라는 크로노미터 인증을 붙여 일반 시계와 구별했다. 이 시기에는 크로노그래프가 개발돼 비로소 초 단위 시간까지 계측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20세기 들어 시계는 또 한 번 질적인 기술 도약에 성공했다. 1927년 캐나다 벨 연구소의 연구원 워런 매리슨 Warren Marrison이 쿼츠시계를 개발한 것이다. 쿼츠시계는 ‘진자도 (중력에 의해) 느려진다’는 진자시계의 근원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1921년 전기가 통하는 석영(쿼츠) 결정이 진자에 비해 덜 느려진다는 사실이 확인돼 이론이 완성되면서 개발로 이어졌다. 

워런 매리슨이 개발한 쿼츠시계는 진공관 구동식 전자 부품을 사용해 그 크기가 매우 컸다. 하지만 1967년 스위스의 시계 전자 센터(CEH·Centre Electronique Horloger)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의 쿼츠 손목시계인 베타 21 Beta 21을 개발하면서, 또 2년 후인 1969년 일본 시계 업체 세이코에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쿼츠시계 아스트론 Astron을 출시하면서 쿼츠시계는 단숨에 전 세계 시계시장을 석권했다.

쿼츠시계는 1960년대 초기 모델도 하루 오차가 1,000분의 1초밖에 안될 정도로 높은 정확성을 자랑했다. 게다가 헤어 스프링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기계식시계 역시 장족의 발전을 거쳐 하루 오차를 몇 초대로 줄이는데 성공했다. 사실상 일상에서 사용하기에 더 높은 수준의 정확도가 필요없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셈이었다. 이후부터 시계는 과학 등 정확하고 세밀한 계측이 필요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일상적인 분야로 나뉘어 발전하게 된다.

현재 가장 발전된 형태의 시계로 공인받는 광학시계 이미지. 10만분의 1펨토초까지 측정 가능하다. 사진=셔터스톡
◆ 1초의 정의도 변해

일상적인 분야에서 시계는 기능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수백 미터 잠수가 가능한 다이버 워치, 강한 내구력을 자랑하는 스포츠·익스플로어 워치, 수심·온도·고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다기능 디지털 워치 외에도 액세서리로 각광받는 클래식·드레스 워치 등 다양한 분류를 진화했다. 물론 이런 분류에 관계없이 시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기계식시계 부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정확하고 세밀한 계측이 필요한 분야는 원자시계를 거쳐 현재는 광학시계로까지 발전했다. 원자시계는 1913년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 Niels Bohr가 ‘원자는 특정한 주파수에서만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이론적 바탕이 마련됐고 1949년 미국 표준국(NBS·National Bureau of Standards)에서 개발에 성공하면서 상용화됐다. 1949년 제작된 원자시계 오차는 8개월에 1초 정도였으나 최근 쓰이고 있는 세슘 소재 원자시계는 3억 년에 1초 오차를 자랑한다.

원자시계의 등장은 초에 대한 개념마저도 바꿔놓았다. 지구의 태양공전을 기준으로 삼은 기존의 1초는 1태양일의 8만6,400분의 1이었으나, 기준이 되는 1태양일이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20세기 과학자들의 배척대상이 됐다. 1967년 과학자들은 비교적 절대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바닥상태의 세슘133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선(빛)이 91억9,263만1,770번 진동하는 시간’을 1초로 재정의했다. 원자시계의 등장으로 인류의 최소 시간 개념도 아득히 낮아졌다.

최근에는 광학시계가 등장하면서 또다시 1초의 정의가 위협받고 있다. 과학자들은 가시광선을 사용하면 더 빠른 진동을 탐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고 이를 이용해 광학시계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1초를 정의하고 있는 91억9,263만1,770번의 세슘 진동 동안 빛의 진동수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다보니 보다 세밀한 빛의 진동수에 맞춰 1초를 재정의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원자시계도 보통 사람의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의 정확성을 갖추고 있지만, 광학시계는 이런 원자시계마저도 우습게 보일 정도로 초월적인 정확성을 자랑한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가 2001년 처음 선보인 광학시계는 오차가 300억 년에 1초였고 펨토초(1초를 1,000조분의 1로 나눈 시간)까지 측정이 가능했다. 십수 년이 흐른 현재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는 2016년 UCLA 공과대학에서 만든 광학시계로 10만분의 1펨토초까지 측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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