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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의 '경영 수다'] '키우는' 게 아니라 '자라는' 겁니다

  • 기사입력 2018.09.10 14:05
  • 최종수정 2018.09.21 13:18
  • 기자명 안병민 대표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리더는 단순히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리더는 이를 위해 직원들이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키워진 인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글 안병민◀

시험지를 빼돌렸습니다. 학교 행정실장을 통해서입니다. 고3 아들이 의대에 진학하길 바랐음에도 성적이 그만큼 나오질 않아 생각해낸 고육책이었습니다. 혹시나 아들이 눈치를 챌까 컴퓨터로 따로 편집까지 해서 건넸습니다. ‘족보’라며 말입니다. 아이가 치는 아이의 시험에 부모가 개입을 한 셈입니다. 그것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러니 사달이 나는 건 당연합니다. ‘위계에 의한 업무 방해’ 혐의로 엄마는 구속되고 아들은 자퇴했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삐뚤어진 모정과 성적지상주의가 빚어낸 참담한 사건입니다.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게 아이의 인생입니다. 스스로 감내해야 할 각자의 몫인 겁니다. 그런데 자꾸 인위적인 개입을 하려 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부모가 생각한 ‘정답’에 맞게 아이가 그렇게 자랐으면,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욕심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부모의 생각이 정답이 아니란 게 문제입니다. “넌 공부만 해. 나머지는 아빠 엄마가 다 해줄 테니.”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 중 하나입니다. 성적만 좋으면 아이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들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듣 지도 보지도 못한 삶의 난제들이 여기저기서 괴물처럼 튀어나옵니다. 청소년기는 그런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능력을 기르고 익히는 시기입니다. 영어단어나 수학공식만 외운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조금 더디 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럴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른바 ‘방황의 권리’입니다. 자발적 방황을 통해 아이는 성장합니다. 지시와 통제에 의해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아이가 창의적이고 주체적일 리 만무합니다. 영혼 없는 일상이 그렇게 이어집니다. 부모가 하라는 대로, 부모가 원하는 삶을 그저 좀비처럼 대신 살아내고 있는 겁니다. 동물원에 사는 아시아 코끼리의 평균 수명은 18.9년으로 일반 야생 코끼리의 평균 수명 50년에 한참을 못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동물원도 자연보다 나을 순 없습니다. 부모는 깨달아야 합니다. 아이를 위하는 거라 생각했던 내 방식이 아이를 되레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벌써 눈치들 채셨을 겁니다. 맞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자녀교육 이슈는 사실 우리의 조직문화와 리더십에 대한 은유입니다. ‘자녀’라는 단어 자리에 ‘직원’을, ‘부모’라는 단어 대신에 ‘리더’를 넣어보세요. 개입하고 간섭하는 부모가 아이의 주체성을 해치는 것처럼, 지시하고 명령하는 리더 역시 조직의 자발성을 가로막습니다. 현명한 리더는, 그래서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믿고 기다려줍니다. 

얼마 전 이를 웅변하는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나영석 표 힐링다큐의 굴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tvN ‘숲 속의 작은 집’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고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에서 제작진 은 기획의도와 달리 자꾸 인위적인 개입을 합니다. 아니나다를까 출연진에 대한 과도한 미션과 내레이션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쏟아진 겁니다. 출연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의 예능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제작진의 불개입이 원칙으로 자리잡은 듯합니다. KBS ‘거기가 어딘데’가 대표적입니다. 이 프로는 오만의 사막 횡단을 첫 프로젝트로 진행하며 제작진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관광’이 아닌 ‘탐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라비아 사막 한가운데서의 출연진은 그래서 날 것 그대로의 시공간을 보여줍니다.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끌어낸, 인기 상승의 비결이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은 직원을 ‘아이’로 간주합니다. 쉽게 말해, 직원을 못 믿는 겁니다. 신뢰가 부족하니 규칙과 규정이 넘쳐납니다. 출근이 늦을 것 같으니 8시 출근 규정이 만들어지고 출장비를 많이 쓸 것 같으니 비용 제한 규정이 생겨나는 식입니다. 모두가 직원의 ‘주인정신’을 믿지 못하기에 생기는 참견이자 통제입니다. 넷플릭스는 이런 사고방식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예컨대, 넷플릭스에는 복장에 관한 규칙이 없지만 아무도 발가벗고 출근하지는 않는다며 휴가에 대한 모든 규정을 철폐했습니다. 필 요할 때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가라는 겁니다. 중요한 건 ‘휴가를 얼마나 사용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내느냐’라는 겁니다. 휴가에 대한 전권을 직원에게 위임한 배경입니다. 이처럼 직원을 믿으니 비용에 대한 규정도 필요가 없습니다. 있다면 단 하나의 문장, 이것입니다. “넷플릭스에 가장 이로운 방향으로 행동하라.” 규칙을 최소화한다는 건 직원을 ‘어른’으로 대접한다는 의미입니다. 직원을 아이로 무시하는 기업과 어른으로 존중하는 기업, 어느 조직의 직원이 주인의식으로 무장하여 자신의 업무에 기꺼이 몰입하고 헌신할지는 불문가지입니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벼가 빨리 자라게 하려고 싹을 뽑아 들어 올렸다는 어리석은 농부의 고사에서 나온 성어입니다. 세상만사 삼라만상엔 거스를 수 없는 ‘섭리(攝理)’라는 게 있습니다. 그 섭리를 거슬러 억지로 뭔가를 하려 하니 자꾸 문제가 생깁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을 보면 ‘자연재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산과 들에 식물이 뿌리를 내린 경우를 보면 그 땅은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그래서 부드럽고 따뜻하다네. 그런 땅을 만들어주면 식물은 자연히 자기 힘으로 자라게 되지. ‘자란다’라는 게 포인트야. 비료를 줘서 키우는게 아니고 자라게 하기 위한 땅을 만드는 거지. 환경을 만들어주는 작업, 그게 자연재배의 핵심적인 일이야.” 리더십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은 키우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라는 겁니다. 인위적으로 ‘키워진 인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라난 인재’가 훨씬 더 건강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그래서 발묘조장이 아닙니다. 직접 비료를 주며 내 틀에 맞춰 키우는 게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잘 자랄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노자는 ‘성공(成功)’이 아니라 ‘공성(功成)’이라 했습니다. 공은 이루는 게 아니라 이루어지게 하는 거라는 의미입니다. 리더 역시 단순히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리더가 고민해야 할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장능이군불어자승(將能而君不御者勝)’. 손자병법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장수가 유능하고 임금이 간섭하지 않으면 이긴다’라는 뜻입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무위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노자의 얘기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시시콜콜 ‘감 놔라 배 놔라’하는 ‘좁쌀리더’들이 깊이 새겨야 할 문구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책임도 없습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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