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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민의 '경영 수다'] 로열셀랑고르는 '예술'이다

  • 기사입력 2018.05.17 14:23
  • 최종수정 2018.09.21 10:42
  • 기자명 안병민 대표

로열셀랑고르는 말레이시아의 주석공예품 브랜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로열셀랑고르 비지터센터’를 방문해 보면 ‘아트마케팅’의 진수를 느껴볼 수 있다.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로열셀랑고르 비지터센터 방문객 체험 모습.
로열셀랑고르 비지터센터 방문객 체험 모습. 사진=로열셀랑고르

 

’로열셀랑고르(Royal Selangor)‘라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주석공예품 브랜드입니다. 로열셀랑고르는 1885년 설립된 회사로 말레이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주석공예품을 만들어 팝니다. 세계 각국 유명 도시와 백화점에서도 판매되는 브랜드입니다.  

제가 이 브랜드를 알게 된 건 지난 겨울 말레이시아 여행 때입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며칠 머물며 현지 관광정보를 찾다 눈에 들어온 게 ’로열셀랑고르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였습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반드시 가봐야 한다고 알려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관광지 중 하나겠거니 하고, 특별한 생각 없이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로열셀랑고르라는 기업의 수준 높은 아트마케팅이 오롯이 녹아있는 비즈니스 최전방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현관을 들어서니 한 직원이 센터까지 어떻게 왔는지, 교통편과 방문 목적, 센터를 알게 된 경로에 대해 간략하게 물어봅니다. 설문조사가 아니라 간단한 대화 형식이기에 불편할 게 전혀 없습니다. 아마도 센터 홍보를 위한 기초데이터를 모으는 듯 합니다. 이어서 국적을 물어봅니다. 한국이라 얘기하고 잠깐 기다리니 젊은 한국 남자 한 분이 걸어오며 인사를 건넵니다. 오늘 우리 가족의 센터 관람을 도와줄 직원입니다.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한국사람을 가이드로 매칭해준 겁니다. ’고객행복‘의 디테일이 살아있습니다. 머나 먼 이국에서 듣게 되는 모국어라 그런지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입구에서부터 로열셀랑고르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 브랜드 스토리입니다. 창업자 용쿤의 일대기를 포함한 로열셀랑고르의 발전사가 아기자기한 기념품들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한 쪽 벽에는 사람 손바닥 모양의 부조들이 가득합니다. 여기 공장에서 일했던 주석 장인들의 손을 하나하나 조각으로 만들어 전시한 공간입니다. 로열셀랑고르의 ’제품‘이 아니라 ’사람‘을 보게 만드는 감성적 접근입니다. 고개를 돌리니 한쪽 켠에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서 있습니다. 이 역시 주석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물론 실제 높이(459m) 50분의 1 크기지만, 그럼에도 10m에 달하는 높이니 그 풍채가 당당합니다. 관람객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지는 포토스팟입니다. 이동 동선 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휴게코너에서는 한 직원이 주석잔에 시원한 음료수를 담아 방문객들에게 건넵니다. 단순한 음료서비스가 아닙니다. 열전도율이 높은 주석잔이 음료수의 냉기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서비스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니 전시관은 자연스레 공장으로 이어집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주석공장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각 작업장 단위 별로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이 보입니다. 그 위쪽으로는 주석 공예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눈 앞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개별 부스를 만들어 놓고 각 공정에 따른 그 분야 장인들이 한창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석은 워낙 무른 성질이라 가공 과정 하나하나가 섬세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집니다. 바로 코 앞에서 주석 제품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관람객들이 직접 제작과정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한 강도의 망치질을 통해 주석잔에 오목한 딤플 무늬를 만들어주는 과정입니다. 삐뚤삐뚤 크기도, 모양도, 간격도 엉망이지만 주석잔에 망치질을 해대는 방문객들의 얼굴에 마냥 웃음꽃이 핍니다.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직접 몸으로 해보니 그 기억은 한층 강렬해집니다. 번 슈미트가 주창했던 ’체험마케팅‘입니다. 

마지막은, 역시나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입니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말이 기념품숍이지, 작품 전시 공간입니다.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제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격도 그렇습니다. 쉽게 손이 가는 수준의 가격대가 아닙니다. 앞서 보았던 것처럼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준(準)예술품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개에 몇 만 원 하는 주석컵에서부터 수 천만 원에 이르는 명품들이 한 공간에서 그 자태를 뽐냅니다. 작은 찻잔 하나도,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을 보면 감탄이 터져 나옵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의 전신 주석상도 보입니다. 긴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언월도를 들고 서 있는 관우상은 정말이지 너무나 근사합니다. 그만큼 하나하나가 생생한 예술작품입니다. 마블(Marble)사와의 협업을 통한 아이언맨 전신상도 있습니다. 고유번호까지 매겨놓은 한정판 작품입니다. 이쯤 되면 여긴 단순한 기념품 매장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 곳의 주석제품 하나하나가 작품이고 명품이고 예술입니다. 비지터센터 방문의 마지막은 세계 최대 1.6톤 무게의 주석잔이 장식합니다. 이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촬영포인트입니다. 거대한 주석잔 앞에서 다들 저마다의 포즈로 이 순간의 즐거운 기억을 저장합니다. 놀랍게도 센터 방문을 포함한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입니다. 

’아트마케팅(Art Market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랜드와 제품에 예술적 요소를 더한 고도의 감성마케팅을 일컫는 말입니다. 품질과 디자인을 넘어, 예술이라는 요소를 통해 차별적 경험을 제공하는 겁니다. 로열셀랑고르는 이런 아트마케팅의 정점이었습니다. 마케팅 기법 중 하나라는 차원을 넘어 로열셀랑고르 자체가 그냥 예술이었습니다. 한 기업의 홍보센터를 방문하는 행위를 미술관 혹은 박물관을 방문하는 예술 관람의 차원으로 상승시켜 놓은 겁니다. 마치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부단한 노력과 불 타는 예술혼을 통해 훌륭한 음악가로 상승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다른 기업들이 피아노를 얼마나 잘 치는지의 차원에서 서로 아웅다웅 경쟁하고 있을 때 로열셀랑고르는 훨씬 더 높은 곳에서 피아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기들을 넘나들며 음악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쿠알라룸푸르 가시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라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넘쳐납니다. ’그 회사 광고, 꼭 한번 챙겨보세요‘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런 저항이나 거부감 없이 고객이 박수를 치며 함께 어울리는 아트마케팅의 현장입니다. 

이런 게 ’전략‘입니다. 남의 전략을 그저 모방하는 ’전술‘적 차원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에서 만들어내는, 판 자체를 바꾸어 리드하는 ’선도‘와 ’초월‘의 개념입니다. 얄팍한 상혼이 아니라 웅혼한 예술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내 업(業)에 대한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겁니다. 로열셀랑고르 비지터센터에서 그 예술과 철학을 읽어냅니다. 그 사유의 높이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헬싱키경제대학원 MBA를 마쳤다. (주)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주)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주)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주)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마케팅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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